콘텐츠큐레이션 - 상실과 애도⑫
콘텐츠큐레이션 - 상실과 애도⑫
  • 미용회보
  • 승인 2018.11.29 13: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실과 애도⑫

애도는 상실을(다시) 봄입니다.


 

"봄이 오고 있다고? 그게 어떤 건데?
아파서 방에 누워 있으면 그걸 볼 수가 없어."

"그건 비가 오고 있는데 햇살이 내리쬐고,
햇살이 내리쬐는데 비가 오는 거야.
온갖 것들이 땅속에서 흙을 밀고 나오고 움직이는 거지."

 

지금 읽어도 참 아름다운 표현이네요. 어린 시절에 콩닥거리며 읽었던 소공녀, 소공자의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의 한 대목입니다.

 

              출처 : 시공주니어

 

12월의 봄을 준비하며

표지를 보니 어디선가 ‘삐걱~~’하는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소녀 메리가 문을 열고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정원의 마술사, 타샤 튜더가 그림 그림이죠. 지금 보아도 그 설렘이 느껴집니다. 벽장에서 때로는 다락방에서 책을 읽던 유년의 그 설렘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표지입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바로 황무지 같던 화원을 통해 사람과 자연에 관해 관심을 가져나가며 폐허가 된 장미화원을 회복해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생뚱맞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각종 송년회 모임이 이곳저곳에서 왁자하게 일어날 한 해의 끄트머리인 12월에 ‘봄’을 맞이할 궁리를 하느라 분주하게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면의 정원에 마구 던져두고 축적해온 상실과 애도 이야기들을 다시 마주 보며 책이라는 플랫폼에 꺼내놓는 것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년간 스스로 건네는 수많은 질문과 망설임 끝에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마치 ‘제 마음의 정원에서 온갖 것들이 땅속에서 흙을 밀고 나오며 움직이는 것’과 같은 조곤거림을 책에 담아 부끄러운 마음으로 내놓는 것이 제게는 ‘한겨울의 봄맞이’가 될 것입니다.
가을로 접어들며 오래 비운 집을 돌아와 청소하고 정돈하듯 던져두고 묵혀놓은 메모, 글 조각들을 다듬고 매만지고 색을 입혀 조금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책에 담는 움직임이 한창입니다. 종이의 질감을 유독 좋아하는 저는 전자책을 봐도 다시 종이로 읽고 싶은 책은 기어코 종이책을 구입하여 낭창낭창한 종이의 질감, 종이, 잉크 냄새를 킁킁~맡으며 읽습니다.

 

다시, 라는 부사를 다시, 보며

요즘 저의 글 조각들을 다시 읽으며 저는 [다시]라는 부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해주는 품사인 부사는 마치 가야 할 길의 방향성을 공고히 다지는 부표 같은 탁월한 기여도를 가진 진면목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다시 돌아가고, 다시 보고, 재생하고, 다시 활용하고, 다시 구조화하고 있어요.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7년 전의 시간을 다시 되감으며 저는 이런 명제를 독자 여러분께 조심스레 건네봅니다. 그 사건은 어릴 때부터 유독 친하다고 생각하며 성장해 온 남동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홀연히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애도는 상실을 다시, 봄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실의 순간’을 내 삶에서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인간의 역사는 상실과 애도의 역사임을 이해하면서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나와 우리의 상실감을 다시 직면하면서 제 품속에 품어왔던 실타래를 풀어 보려고 해요. 『비밀의 화원』에서 주인공 메리가 폐허로 방치된 정원을 '엄마의 정원'이라 부르며 하루하루 친구들과 가꿔나가며 성장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 pixabay

 

다시 마주할 힘, 애도력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매체에 기고와 인문강연을 해오며 일관되게 '애도력'(哀悼力)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아감에는 다양한 힘이 필요합니다. 공부할 힘. 먹을 힘. 사랑할 힘. 버티는 힘. 져주는 힘. 다시, 시작하는 힘.
수없이 많은 힘이 필요하겠지만···. 살아갈수록 애도하는 힘과 용기. 즉, 애도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건·사고 이야기를 접하며 그것이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인생에서 크고 작게 마주하게 되는 최악의 순간이라고 여겨지는 상실을 겪으며 어떻게 다시 살아내고 만들어나갈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 말입니다.

동생의 자살이라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시간의 끝에서 다시 사유하고 말하고 소통하며 슬픔과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제게는 ‘책'이었습니다. 유년, 청소년기, 성인기를 지나오며 길을 잃고 방황할 때도 제게 나직이 말을 걸어준 것이 책입니다. 아마도 그런 내적 경험으로 가장 큰 상실의 순간을 건너오면서 직업을 바꿔 책을 만드는 출판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여럿이었지만 외로워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저는 책에서 그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틈을 발견해나갔습니다. 맞아요. '틈'입니다. 책에서 삶의 틈을 찾고 확장해나가며 성장해왔고 앞으로 성장해나가겠지요. 그래서 2018년 봄에 문을 연 작은 출판사 이름도 [책틈]이라고 지었습니다.

여러분도 영화처럼 되돌리고 싶은 간절한 순간들이 쌓여있으실 겁니다. ‘만약···. 그때 그랬다면’이라는 되돌리기를 무한 반복해 본 사람은 상상의 끝이 얼마나 먹먹한지 조금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지금 이 순간도 한 방향으로 갈 뿐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철저한 일회성의 법칙으로 움직이고 있지요. 다시, 들여다보고 들추고 동선을 따라가는 일은 다시 수렁에 함몰되는 것을 넘어 내 삶에서 재구성되어 확장되고 공유되어 삶의 한편을 밝혀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몸으로 마주하며 글을 씁니다.

 

                                                                               출처 : pixabay

 


제 작은 이야기가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을 위로해줄 수 있는 손 내밂으로 전환되는 시간의 선물로 재구성되기를 바라며 다시 시작합니다.

Anyway, Keep Going!

 


김도경

sfumato_f@naver.com 010 7750 5761

(주)인포디렉터스 콘텐츠디렉터,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