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시네마 리뷰]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 미용회보
  • 승인 2018.10.29 16:23
  • 조회수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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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도서관을 넘기면 민주주의라는 숲에 다다른다”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은 세계 5대 도서관중 하나로 꼽히는 뉴욕의 명소다. 희귀본을 포함해 5,000만점 이상의 도서와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세익스피어의 첫 작품집과 구텐베르크 성서도 이곳에 보관돼 있다. 1911년 개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뉴욕 5번가에 위치한 본관 내 4개의 메인 도서관과 맨하탄, 브롱크스, 스태튼 아일랜드 곳곳에 자리한 88개의 분점으로 이뤄져 있다.
다큐 거장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뉴욕 공립 도서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학교와 병원, 미술관 등 주로 공공기관을 소재로 삼아 독자적인 영화 영역을 쌓아온 감독 특유의 시선이 담긴 영화다.
도서관은 흔히 책을 보관하고 대여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 공공도서관은 이런 기본적인 기능 외에 교육과 공연, 전시, 강연 등이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이같은 도서관이 수행하는 다양한 업무들을 관찰하고 재구성한다. 도서관 직원과 임원진, 도서관 이용자, 강연자와 청중 등 인물은 물론 도서관 안팎의 공간과 장소가 주는 울림을 뒤섞는다.
와이즈먼 감독은 도서관의 기능이나 역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디지털 시대의 도서관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달할 생각도 없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라면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거나 인물의 영웅담 혹은 억울함에 초점을 맞춰 극적 효과를 노릴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특성에서도 벗어나 있다.
와이즈먼 감독은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영화 양식으로서 다큐멘터리의 방법론을 초기부터 지금까지(<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데뷔 50주년인 2017년 개봉) 고집스럽게 밀고 있다.

 

 

도서관은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하나

와이즈먼 감독은 어떤 진실을 밝혀내려는 것보다 공간이나 장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한다. 맥락 안에서 사람들이 상호 맺는 관계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조각처럼 배치, 전체 서사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촬영하면서 시퀀스를 수집, 이를 토대로 구조를 짜고 서사를 만들어가는 그만의 방법론이다. 그는 이를 ‘리얼리티 픽션’이라고 명명했다. 팩트를 바탕으로 시퀀스를 배치, 전체를 영화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극적 내러티브다. 와이즈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다루는 영화들은 일종의 자연사인데, 내가 관심을 갖느냐 마느냐를 떠나 그들은 있다”며 “그러나 그것이 영화의 형태로 존재하려면 극적 내러티브가 필수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도 시퀀스가 쌓이며 극적 내러티브를 전한다. 이를 통해 도서관을 넘어 한 사회의 관계망을 드러내며 관객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인류사 혹은 자연사의 한 부분으로서의 도서관이 드러나는 셈이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12주간 촬영됐고, 촬영 분량만 150시간에 이른다. 최종 상영본은 3시간 17분이다.
이 영화의 시퀀스들은 크게 강연(토크쇼)들과 임원진 토론, 공연, 교육, 직원 응대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별도의 인터뷰와 내레이션도 없고,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자막으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직원, 임원, 강연자, 연주자 등으로 기관이 행하는 업무에 배치된 인물로서만 존재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퀀스 중 뉴욕 도서관의 임원회의가 수차례 등장하는데, 처음엔 누가 전체 조직을 이끌어가는 CEO인지 알 수 없다. 강연자도 대외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리처드 도킨스나 패티 스미스, 엘비스 코스텔로 정도만 식별이 가능할 정도다. 특정 장소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과 다르다.
또 100년이 넘은 뉴욕 공립 도서관의 역사성에도 특별한 관심이 없다. 오랫동안 축적해온 도서에 관한 내용(구텐베르크 성경을 제외하고)도 카메라는 외면한다. 그렇다고 도서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애환이 담긴 것도 아니다.
와이즈먼 감독은 뉴욕 공립 도서관이 현재 행하는 업무인 ‘디지털화’와 강연,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담는데 치중한다. 영화 앞뒤에 배치된 강연 장면과 여러 번 등장하는 임원회의 장면, 중반부에 등장하는 뒤러의 코뿔소 설명 장면은 어쩌면 와이즈먼 감독의 의도나 방법론을 압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정보 접근은 평등해야 한다

영화 앞부분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강연 장면이 나온다. 리처드 도킨스는 미국 내 무신론자가 20%에 달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자신이 만든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과학은 현실의 시다. 칼 세이건, 닐 타이슨, 캐럴린 포르코 등의 학자들은 시인처럼 우주를 내다본 인물들이다. 방대한 우주와 셀 수 없는 별을 보면 어떻게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전한다.
영화 중반부에는 뒤러의 코뿔소 일화가 등장한다. 뒤러는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태에서 이를 그렸다고 설명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 연사로 나온 인물이 프리모 레비의 말을 인용한다. “만드는 방식이 당신을 정의한다.”
그래서 어쩌면 임원회의 장면이 전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경험의 축으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임원회의가 그렇다. 이 장면에서 민간기금 유치의 중요성과 인터넷 접근권, 디지털 플랫폼 구축 등이 설명된다. 이 내용은 영화에서 수차례 강조된다. 무엇보다 뉴욕시민의 30% 가량이 집에 인터넷이 없어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해 1만세대에게 인터넷망(핫스팟)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자고 한다. 또 보유 도서의 디지털화를 위해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이를 설명하는 인물이 도서관 CEO다. 그는 “21세기 학습도구는 인터넷이다. 인터넷 대여 사업을 통해 정보 결손 문제를 해결하고 디지털 암흑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접속하지 못하면 정보가 아니다. 우리가 보유한 도서는 인터넷 열람이 불가능하다. 디지털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런 사업들은 민간 자본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보의 뷸균등 문제 해결과 교육 제공, 정보 접근성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직원들의 말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도서관은 늘 시의 교육체계를 보완해왔다”거나 “우린 시민의 삶과 지역사회를 개선하려 노력한다. 우린 마음을 살찌우고 영혼을 강하게 하며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다”는 말이다.
영화는 이같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각종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 댄스나 창작 강좌, 각 분점의 지역 커뮤니티 토론 장면으로 옮겨간다. 노예제와 이슬람의 관계, 교과서에 반영된 미국 노예제가 백인 계약제 하인과 어떻게 다르게 기술됐는지도 언급된다. 흑인들을 위한 숌버그 센터 등의 지역사회를 위한 프로그램도 비중있게 소개된다. 직원들간 노숙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토론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이같은 시퀀스들이 모이면서 뉴욕 공립 도서관은 개방성과 포용성, 투명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대변하는 장소라는 조각이 맞춰진다. 이로 인해 이 영화는 뜻하지 않게 트럼프 시대의 정치적인 영화가 됐다.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민주적인 가치들이 트럼프가 대변하는 가치와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처음으로 음악이 나온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주제곡과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뤄진 이 음악은 영화에서 반복되는 변주를 압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영화 속 토니 모리슨의 인용구가 말하듯 도서관은 가장 위대한 민주적인 기관이라는 것이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N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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