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⑧ - 때가 됐다. 비워야 할 때
일상문화탐구⑧ - 때가 됐다. 비워야 할 때
  • 미용회보
  • 승인 2020.07.31 17:21
  • 조회수 8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 이 순두부도 유효기간이 1주일이나 날짜가 지났네. 
이 마요네즈는 날짜가 지난 지 6개월이 넘었어요. 색깔이 까매졌네.
이 식초는 지난번에 내가 버렸는데 다시 주워와서 또 넣어뒀네. 
결국 먹지도 않아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데 왜 버리지를 못해요.
냉장고 안에 있어도 다 상한다니까. 
엄마 몸이 이 순두부 한 봉지보다 더 소중하다고요.


그냥 놔둬라.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니. 
뚜껑도 안 땄으니 날짜 지나도 먹어도 되겠지.
너는 오면 왜 맨날 다 버리지 못해 안달이야

<사진 출처 1-EBS 하나뿐인 지구>

거대해지는 냉장고가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다

지난 주말 엄마에게 다녀왔다. 집에 갈 때마다 필자가 제일 먼저 점검하는 장소는 주방이다. 그중에서도 요주의 장소는 바로 ‘냉장고’. 싱크대와 식탁에 민낯을 드러내고 누워있는 무, 대파, 양파, 마늘은 물론 뚜껑도 없이 초파리들의 놀이터가 된 쌈장통, 고추장통. 두 개의 냉장고에 여기저기 쌓여 정리되지 않은 채 추레한 모습으로 쌓여있는 먹거리들. 매번 같은 말이 오가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어 냉장고에서 끄집어낸 유효기간이 지난 음식, 유효기간을 확인할 길 없는 오래된 음식들이 쓰레기봉투에 쌓여 밖으로 내던져진다. 

필요보다 많이 구매하고, 한 번에 소화하지 못해 오랜 기간 저장하며 제때 건강하게 소비하지 못한 음식들은 냉장고에서 그렇게 잊힌다. 냉장고로 들어오는 새로운 음식물에 밀리고 밀리다 결국에는 쓸모없는 것으로 지목되어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는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 두 번은 경험했으리라. 심지어 엄마는 최근 주방의 오래된 싱크대를 철거하고 새 싱크대를 설치했다. 수납공간이 많을수록 기존의 주방용품들을 못 버리고 고스란히 새 싱크대에 빽빽하게 채워 넣으실 게 가장 염려됐다.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는 성향일수록 수납공간이 적은 것이 그나마 강제적인 물량조절이 되기 때문에 엄마에게 수납공간이 적은 수납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1인 가구인 엄마의 수납공간에 대한 욕구는 강렬했기에 새 싱크대의 수납공간은 결국 가득 찼다. 한숨이 나왔다. 필요와 욕구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욕구가 다시 필요를 집어삼킨 것이다. 

점점 거대해지는 냉장고. 이제는 신축 아파트 공간 설계 시 냉장고 1, 냉장고 2, 김치 냉장고, 냉동고 공간까지 미리 확보하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엄마에게 다녀온 후 몇 년 전 읽었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에 관한 철학자 강신주의 칼럼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는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으며, 행복한 공동체, 생태 문제에 동참하고 싶고 가족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느냐고 묻는다. ‘예스’를 원한다면 당장 냉장고를 없애라! 고 한다. 현실적으로 냉장고를 없애기는 매우 어렵기에 거대한 냉장고 욕구로부터 탈출하여 냉장고 용량을 축소하는 것부터 해보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당장 냉장고가 없는 일상생활은 대략 난감하다. 필자는 현재 쓰는 양문형 냉장고가 고장나면 문 두 개짜리 저용량 냉장고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는 중이다. 그렇다. 깊이 생각해보면 냉장고는 단순한 주방가전 제품이 아니다. 냉장고를 아예 없애거나,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냉장고 용량을 대폭 줄임으로써 우리 삶의 라이프스타일은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 냉장고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냉장고에 방치된 식품들은 오늘도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다. 동시에 대량생산을 위해 고기나 채소에 가혹한 생육 방법이나 유전자 조작이 가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시간을 살며 ‘비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족, 지구 모두를 위해 어쩌면 가전제품일 뿐인 냉장고 용량을 대폭 줄이는 것으로 충분히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
물건을 버리며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함께 해보자 
내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생각하며 질문해보자. 

 

<사진 출처2-tVN>


각이 제대로 선 질문
필요냐 욕구냐!

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옷, 책만 주기적으로 비워오던 ‘공간 비우기’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지난 6월부터 공간을 조금씩 쪼개어 천천히 비우는 중이다. 예전에는 짧은 기간 동안 ‘대청소’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했다면 지금의 방식은 ‘삶의 재구성’이라는 시각으로 서서히 실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매우 유효했던 질문은 ‘필요냐 vs 욕구냐’였다. 이미 수많은 정리법 관련한 책에서도 나온 질문법이고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 집주인과 함께 물건정리와 공간을 재구성하며 물건에 대한 추억으로 버리지 못해 갈등하는 집주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필요입니까. 
욕구입니까
“ 


이 질문만으로도 물건에 대한 성찰과 추억, 자기 집착의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유의미한 물음이다. ‘필요’로 구분되어 잔류했다가 고개를 흔들거나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다시 ‘욕구’로 보내지는 그 과정이 내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일치한다. 그것이 단적으로 건강과 연결되며 동시에 공간을 차지하는 냉장고이든 스마트폰과 노트북 속에 저장된 엄청난 사진과 파일이든 이제는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기 위해 쌓여있는 것들을 비워야 할 때가 됐다. 물건을 버리며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함께 해보자. 내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생각하며 질문해보자. ‘이게 내 삶에 꼭 필요해? 뭣이 중헌디?’이 질문만으로도 물건 비우기는 물론 삶의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선사하지 않을까!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