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탐구4] 낭독의 새로움, 듣기의 고마움
[일상문화탐구4] 낭독의 새로움, 듣기의 고마움
  • 미용회보
  • 승인 2020.03.2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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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의 새로움, 듣기의 고마움



게다가 수레국화의 주치의 제레미는
그런 나의 사정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송 부인의 동의하에
그는 강장제를 처방하듯
나의 낭독회를 처방한다.

“아, 네.”
그는 신경쇠약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지금 당신에 필요한 게 뭔지 알겠어요!
당신에게 그레구아르를 처방해야겠군요!
그레구아르를 만나보세요.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중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생애사 쓰기를 하며
낭독을 시작한 그녀

2003년 한 교육기관에서 열린 문화유적 프로그램의 강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꽤 많은 나이 차이를 초월해 우정을 나눠온 ‘그녀’가 얼마 전부터 생애사 글쓰기 모임의 활동 중 하나로 ‘책 낭독’을 시작했다. 낭독 하다 좋은 글은 일정 분량을 타이핑하여 소셜네트워크에 공유하며 나누는 그녀. 낭독 후 옮겨쓰고 교정보느라 다시 읽다 보면 분명히 읽었지만 놓친 글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며 이제부터는 뭐든지 일부러라도 소리 내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노라 한다. 이른 아침 일어나 낭독으로 하루를 열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직접 입력해 보내주는 소설의 한 페이지를 읽는 재미와 기다림이 제법 쏠쏠하다. 필자는 20대 초반 시절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은 신문 연재소설을 읽기 위해 신문을 구독했다. 다음 날 새벽 마당에 ‘툭~’하고 신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뛰어나가 궁금했던 연재소설을 읽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추억이 되살아나 냉큼 책을 구매하기보다 매일 일정량의 혈액을 수혈받듯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설레며 기다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에서 요양원의 모렐 부인이 유언장에 그레구아르에게 마지막 순간에 낭독을 부탁했다. 그레구아르의 책 낭독을 들으며 마지막 호흡을 끝내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대목에선 그때 듣고 있던 에드가 모로의 무반주 첼로 곡과 어우러져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프기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주도적인 마무리를 하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그 대목을 낭독할 때 목이 메이고 파르르 목소리가 떨렸으리라.

생각보다 아주 오래된 직업, 낭독가
서양에서 낭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의 ‘케릭스(Ceryx)’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전달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케릭스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헤르메스(Hermes)의 아들이다. 고대 그리스를 지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낭독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경건한 낭독과 연애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인 낭송으로 나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15세기에 들어서며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문맹이 줄어들고 음유시인들은 사라져 갔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만 해도 책을 읽을 수 없는 문맹들이 많았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라 책이 귀했기에 이야기책이나 소설을 낭독해 주는 ‘전기수’라는 직업 낭독가가 인기를 끌었다.

그림  단원 김홍도 <담배썰기>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책을 낭독해서 읽으면 읽은 내용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천자문이나 구구단을 외울 때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낭독을 통해 얻는 유창성은 읽기 과정에서 소리와 문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외국어학습에서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낭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린 분명한 결론 중 하나는 글쓴이의 의도가 명확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쓰인 글은 낭독해보면 더 확연하게 글맛이 난다는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표현대로라면 ‘입맛이 난다’라고 한다. 낭독을 하면 문장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낯선 단어도 입에 담게 된다. 묵독을 할 때보다 낭독을 하면 화자의 의도가 글에서 더 섬세하게 다가오며 감정의 여운이 오래 머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디지털의 옷을 입었다.
차가움이 전하는 따뜻한 감성

종이책의 낭창낭창한 종이 질감을 느끼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책장을 넘겨줘야 읽는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활자를 좋아하고 종이책을 좋아하다 결국 책을 짓는 사람이 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필자를 떠나지 않던 고민이 하나 있었다. ‘난독증’이라는 단어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몇 시간이고 책에 빠져들어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어 밤을 새워 책을 읽던 집중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을 만들며 책을 더 읽지 못하는 아이러니라니. 현대 생활환경이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일상이 많다 보니 인터넷 정보 중심으로 보는 방식으로 내 읽기의 촉수가 더 발달한 것인지 책을 잡아도 글자를 읽기는 하되, 일차적 가독에서 끝나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노안까지는 아니지만, 작년부터 급격히 약해진 시력에 녹내장 경계 진단과 정기적인 추적 관찰을 권고받았다. 이러저러한 몸의 상황이 빽빽한 활자로 가득한 두꺼운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방어심리가 난독증이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확장된 게 아닌가 싶었다.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 그림 출처 : 픽사베이

현대인들은 아침을 깨우는 스마트폰의 알람부터 잠들기까지 대부분의 일상이 디지털 기기의 멀티미디어들로 채워졌다. 일상의 사물들도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에 연결된 생활에 익숙해지며 점점 종이책과 멀어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독서 환경도 달라지며 종이책에 이어 전자책과 오디오북 같은 미디어 출판콘텐츠가 독서 플랫폼의 영역을 숨 가쁘게 차지해가고 있다. 이런 다양한 독서 디바이스는 영상 세대인 젊은 세대는 물론 종이책과 종이신문에 익숙한 중장년층에게도 대안적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나이 듦과 함께 시력의 약화로 혹은 몸이 좋지 않아서 장시간 책 읽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뿐 아니라 운동이나 운전을 하는 시간에도 독서를 병행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디오북(Audio Book)을 통한 대안적 책 읽기를 점차 선호함에 따라 오디오북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책을 읽고 싶지만, 몸이 허락해주지 않을 때 침대에 누워서도 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누워서 책을 듣다가 10분도 안 되어 코를 골기 일쑤지만. 종일 지친 눈을 보호하며 그나마 책을 만날 수 있는 차선책이 있음에 출판인으로서도 독자로서도 감사하다.

낭독의 발견, 어쩌면 나를 만나는 오솔길
며칠 전부터 필자의 책 『서둘러, 잊지 않습니다』를 매일 한 편씩 낭독하고 있다. 일상의 대화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웠던 다른 목소리를 만나며 자연스럽게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을 내 목소리로 다시 마주하며 내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내가 깊게 들어주는 시간이라고 할까. 작년 겨울, 3개월에 걸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며 매회 참여자들이 쓴 자신의 글을 자신의 목소리로 낭독하게 했다.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글로 쓰는 것도 힘겨운데 낭독까지 하라니 난감해했지만, 필자는 내면의 자기 목소리를 글로 꺼내 눕혀 놓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소리로 그 말들을 세워보는 낭독을 고집했다. 참여자들은 읽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눈물을 떨구며 이내 어깨가 흔들렸다. 목이 메어 침을 겨우 삼키기도 하다가 가까스로 낭독을 마치며 뜨거운 눈물 한 줄이 흘러내린 뺨을 닦아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차마 더는 못 읽고 누르고 눌러왔던 깊은 슬픔을 비로소 토해낼 때 곁에 앉은 참여자가 그의 손에서 조용히 종이를 가져가 대신 낭독해주기도 했다. 이후 그간의 글들이 모여 책으로 만들어 작은 출간 기념회를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각자 한 편씩 글을 낭독했다. 그때 나온 소감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들었던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글로 쓰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글을 낭독해내며 자신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타자로서 바라보고 느끼게 되었다는 소감이었다. 어쩌면 낭독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가장 원초적인 정화 작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낭독은 어쩌면, 또 다른 타자인 나를 만나는 온전한 오솔길일 수 있다. 뷰티엠 독자들께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이나 글을 낭독해보시길 적극적으로 권한다.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중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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