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벌새
[시네마 리뷰] 벌새
  • 미용회보
  • 승인 2019.10.01 15:26
  • 조회수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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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은희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방식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을 세차게 두드리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응답이 없다. 영화 <벌새>는 열리지 않는 문으로 출발한다. 잘못 찾아간 집이란 건 곧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오프닝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압축한다. 그것은 불안과 균열의 정서다. 중학교 2학년생 은희의 현재 심리 상태이기도 하다.
은희가 자신의 집을 잘못 찾아갔을 때,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은희의 모습은 다급한 구조요청처럼 보인다. 혹은 자신만 두고 가족들이 사라졌을 것만 같은, 버림받았을 거라는 극도의 공포감으로도 느껴진다. 문은 닫혀 있고 응답이 없는 상황은 14살 은희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일 터이다. 영화 <벌새>는 은희를 둘러싼 불안정한 세계와 그것이 은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미세하게 들여다본다.
은희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노는 아이도 아니다. 학교는 물론 집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아이다. 은희는 우열을 나누는 학교와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속에서 무력하기만 하다. 은희를 둘러싼 세계는 은희가 맺는 관계로 이뤄진다. 은희에겐 단짝 친구 지숙이 있고 남자 친구 지완이 있다. 은희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후배 유리도 나타난다.
그리고 가족이다.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는 늘 바쁘고 은희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공부 잘하는 오빠를 편애하며 춤바람이 난 듯하다. 부모에게 모범생으로 사랑받는 오빠는 은희에게는 폭력적이다. 경쟁에서 밀려난 언니는 일탈을 일삼는다. 그리고 엄마는 삶에 지쳐있는 듯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나아가는 여정

은희가 엄마를 애타게 부르지만 응답하지 않는 장면은 영화 중반부에 한 번 더 나온다. 은희가 병원 진료를 마치고 귀가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우연히 엄마를 발견한 장면이다. 은희는 엄마를 몇 번이고 부르지만 엄마는 듣지 못한다.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다. 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보인다. 출구가 없는 엄마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엄마는 떡집일과 가사노동, 아이들 뒷바라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꿈인 듯 표현된 이 장면은 그런 엄마의 상황을 알리는 듯하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 엄마와 은희의 교감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은희에게 한문학원 선생 영지는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영지는 은희에게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눈을 들여다봐주는 첫 어른이다. 속마음을 아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거나 함부로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등 그동안 학교에서 들은 적 없는 말들을 듣는다. 그리고 귀밑 혹 수술로 입원했을 때 찾아와서는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우라고 얘기한다. 이 장면은 꿈인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어쩌면 30대말에 접어든 현재의 은희가 과거의 은희에게 건네는 응원일지도 모른다.
영화 <벌새>는 은희를 둘러싼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사를 쌓아나간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균열을 직조하며 나아간다. 은희가 맺는 관계는 사소하지만, 은희가 겪는 이별은 세상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다. 가족간 어긋남이나 친구와의 다툼, 남자친구의 바람, 동성 후배의 외면 등에서 마음의 균열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다. 14세 소녀에게는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불안과 균열의 정서는 점층적으로 거대한 붕괴로 이어진다.
1994년 10월 21일. 자막으로 나타나는 사건은 성수대교 붕괴다. 성수대교를 건너 등교하는 언니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안도하지만 은희는 영지가 이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자기 학원을 그만둔 영지에게 소포가 도착한 후다.
이렇게 영화 <벌새>는 역사적 사건을 관통한다. 관계의 균열과 재난을 연결시킨 것뿐만 아니라 시대의 공기까지 담아내 그 시대를 거쳐 온 이들의 현재까지 돌아보게 만든다.

 

1994년, 욕망의 시대를 관통하는 시선

영화는 전체적으로 은희를 둘러싼 세계를 그리지만, 1994년과 강남이라는 배경에서 자본과 성장이라는 욕망이 들끓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느낄 수 있다. 93년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당시 정부는 글로벌화를 외치며 글로벌 자본주의 편입을 앞당겼다. 성수대교 붕괴는 압축성장으로 앞만 향해 달려온 한국사회에 균열을 일으킨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듬해 삼풍백화점 붕괴와 97년 IMF 체제로 이어지는 붕괴의 서막이란 점에서다.
영화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를 서사의 중심에 놓고 강남 재개발과 철거민 문제도 언급한다. 은희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 등굣길에 학교 앞 철거민들의 시위 공간이 훼손된 것을 바라본다. 이 공간은 현재 타워팰리스가 들어선 곳이다. 철거민 시위 현장을 본 은희가 왜 남의 집을 뺐냐는 질문에 영지 선생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지 라고 말했던 그곳이다.
은희는 영지가 사고로 죽은 걸 알고 돌아온 날, 엄마에게 돌아가신 외삼촌이 보고 싶냐고 묻는다. 엄마는 “그냥 이상해, 너네 외삼촌이 이제 없다는 게”라고 답한다.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은 어제까지 있던 공간이 훼손되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과 동일하게 놓인다. 이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성수대교 붕괴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벌새>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성장영화지만 지금 현재의 시선으로도 유효하게 읽힌다. 지금 현재의 모습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마주보지 않고, 자녀들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란 점에서다. 오히려 더 심화된 시대. 우열은 부모의 능력에서 이미 결정되며, 부모의 정보력에 따라 진학의 옵션이 달라지는 시대다.
어쩌면 영화 <벌새>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를 감싸 안는 위로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1994년의 14살 은희와 2019년의 14살 은희는 물론, 두 시대를 잇는 영지, 그리고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은희는 관계의 균열과 상실을 겪으며 엄마의 안부를 물어볼 정도로 성장했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반영한다.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은희는 수학여행 출발을 앞두고 그동안 보지 못하던 주변을 살피기에 이른다. 이때 영지가 은희에게 보낸 편지가 들려온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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