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큐레이션] 처음 늙어보는 나를 발견하며
[콘텐츠 큐레이션] 처음 늙어보는 나를 발견하며
  • 미용회보
  • 승인 2019.05.30 15:37
  • 조회수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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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애도 18



자네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스스로 안심시키는 거야.
오리엔탈 특급열차를 상상하면서 말이야.
다른 하나는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삶의 끝자락에 마주하며
2011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노인들 Arrugas, Wrinkles>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노인 요양원을 무대로 두 노인의 관계를 주로 다루며 요양원에 입주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먼저 입주해있던 미구엘이 알츠하이머 등으로 판단력을 상실해가는 노인들의 사정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돈을 축적하는 이야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격한 갈등구조나 화려한 에피소드 하나 없지만, 질병, 외로움과 상실감을 겪으며 삶의 끝자락에 마주하게 되는 스토리가 먹먹하게 다가옵니다.

 

애니메이션 노인들 포스터

 

이 애니메이션을 더욱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 것은 필자의 아버지께서도 초기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며 2년 전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노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모두가 겪는 고민이겠지요. 그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간여행자의 발견
4월의 끝자락에 80세 노인의 몸이 되어 45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치 얼마 전 큰 주목을 받았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혜자’가 되어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았습니다. 드라마의 혜자와는 달리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체험관을 벗어나며 가슴을 슬쩍 쓸어내렸다는 고백을 해봅니다. 용산에 있는 <노인생애체험센터>에서 진행하는 총 2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진행된 노인생애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입니다. 60대 이상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정한 인문 활동 프로그램을 논의하며 서점 대표와 특강 진행자인 필자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40대인 우리가 아무리 생각한들 온전히 체득하기 어려운 노인의 몸을 짧게라도 체험 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체험 후, 서점 대표는 시력을 잃어가며 환시幻視를 호소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지켜보는 안타까움과 슬픔, 노화로 인한 몸의 변화로 뒤따라온 어머니의 심리적 위축감을 비로소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필자는 2주 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 왔다는 근황을 전하며 그날의 느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을 뵈며 노화, 질병으로 인한 몸의 고통은 결국 개인의 몫이고 특히, 필자의 아버지가 앓고 계시는 알츠하이머(치매)는 증상 정도에 따라 그간 종횡무진 활동해오던 세계의 급격한 축소 또는 상실을 의미한다는 등 노년의 삶에 관해 상실감, 쓸쓸함, 안타까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돌아가는 길에 나눴습니다.

 

체험 사진 1
체험 사진 2

 

작지만 중요한 발견의 순간들
9명의 체험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습니다. 황반변성, 녹내장 현상을 적용한 고글 착용부터 팔목과 발목의 모래주머니, 손가락과 어깨, 등에 대는 억제대를 착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팔과 다리용 관절 장비까지 착용하니 몸이 휘청하고 눈앞이 흐릿해졌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허리가 앞으로 휘어지며 한 발짝 옮기는 것조차도 제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더군요. 80대이신 부모님을 가까이 지켜보면서도 미처 가늠할 수 없었던, 상상을 넘어서는 행동반경의 제약과 불편함 그리고 위험이 온몸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반적인 집 구조를 구현해놓은 체험관의 첫 난관은 의외로 현관이었는데요. 모래주머니와 억제대를 착용하니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벗는 ‘사소한 행위’ 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 의지와 달리 몸은 저만치서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순간순간 절감했습니다. 현관 입구에 낮은 의자 또는 부착용 손잡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매우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냉장고 문 열기와 음식 확인, 주방 체험 공간에서는 ‘뚜껑을 편하게 열 수 있는 반찬통으로 바꿔드려야겠다는 것과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구나’라는 인식을 했습니다. 소파에 앉거나 바닥에 앉고 눕는 것, 화장실 이용, 계단, 장롱 열기 등의 체험을 하면서는 ‘화장실에 보조 손잡이를 설치해드리는 게 필요하겠다’라는 그간 미처 살피지 못한 작지만 중요한 발견의 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요즈음 ‘발견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깊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발견發見 Discovery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 알다, 깨닫다, 알아채다, 나타내다, 밝히다’라는 뜻이 있다. 결국은 일이나 몸이나 마음이나 인간관계 등 모든 삶의 순간들이 ‘발견성’이 기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몸을 통해 심장이 서늘하도록
얕고 짧은 체험이었지만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노년의 몸을 직접 느끼고 발견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사물로부터 낯섦과 소외를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관계, 기억, 미각으로부터 점차 고립되어가는 부모님을, 전철과 횡단보도에서 고군분투할 30년 후의 제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은 체험’을 통한 ‘깊은 발견’을 느끼며 노인의 몸과 활동에 대해 향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고민을 남겼던 시간입니다. 체험을 통해 ‘80대의 몸’으로 처음 늙어보는 나를 발견하며 노년의 몸에 대한 이해를, 남아 있는 생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죽음과 늙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것이 몸을 통해서는 심장이 서늘하도록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미니북

 



나는 이제 연장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두렵거나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해가 저물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임종 직전 메모라고 알려져 있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먹먹해지게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담담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면 가능한가요. 어떻게 나이 들어가면 가능할까요. 삶이 저무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담금질해 온 자신의 연장인 언어로 삶의 끝말을 새기고 떠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리며 온전한 자기 의지와 언어로 자기 삶을 닫고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요즘 들어 자주, 많이 생각합니다.

 


 

  김도경  

도서출판 책틈 편집장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산업
대우증권, SK사회적기업,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등 근무
정부, 공공기관 공공문화콘텐츠 기획개발 및 사업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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