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리뷰] 생일
[시네마 리뷰] 생일
  • 미용회보
  • 승인 2019.04.30 17:18
  • 조회수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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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이들이 슬픔을 나누는 방식

* 이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남겨진 사람은 같이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공간에 스며있던 기억들이 불쑥 떠올라 일상을 지연시킨다. 그렇게 멈춘 순간 상실감이 틈입한다. 그런 시간은 베란다나 거실, 부엌, 안방에 이르기까지 가득 차 비어버린 마음으로 나타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켜지는 센서등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마음이다.
영화 <생일>의 정서가 그렇다. 영화 <생일>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가족이 일상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남겨진 이들에게 그날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일상은 다시 멈춘다. 사고로 아들 수호를 잃은 부부 순남(전도연)과 정일(설경구), 그리고 딸 예솔(김보민)은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일상을 견디고 있다. 이들에게 한 단체가 떠난 아들을 기억하기 위한 생일 모임을 열어주자고 제안한다. 망설이던 이들은 생일 모임 제안에 응하고, 이날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아들 수호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그날을 잊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이야기

그날 수호가 배에 오르지 않았다면, 23살 청년이다. 그렇지만 이들 가족에게 수호는 18살 아이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디고 있다. 순남은 홀로 슬픔을 삭이며, 예솔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정일은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순남은 언제나 그랬듯 새 옷을 사와 수호의 방에 걸어놓고 말을 건넨다. 반찬 투정하는 예솔에게는 화를 낸다. 오빠는 먹을 수도 없는데 투정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식으로 홀로 슬픔을 견디고 있다.
예솔은 물을 두려워한다. 갯벌 체험학습에서 발을 떼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날 이후 생긴 트라우마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엄마에겐 비밀로 하자는 속 깊은 아이가 됐다.
정일은 그날 이들 곁에 없었다. 어떤 사건으로 베트남 감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돌아온 정일은 아내와 어린 딸의 곁에 있고자 하지만 순남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일은 미안함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 다시 관계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들을 잇는 매개는 센서등이다. 센서등이 켜지자 순남은 뒤를 돌아본다. 순남은 아들의 인기척을 느낀다. 예솔은 어느새 친해진 아빠에게 아무 때나 센서등이 켜진다며 고쳐달라고 한다. 정일은 센서등을 고치면서 가족 안으로 더 다가간다. 센서등은 후반부 일상의 회복이라는 상징으로도 나타난다.
<생일>은 그날에 멈춰있는 이들의 일상을 덤덤하게 쌓아나간다. 감정을 터트리지 않고 꾹꾹 누르고 있다. 이들은 세월을 그렇게 견뎌냈을 것이다. 이들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정서도 함께 전한다. 수호 친구나 배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그날을 잊으려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함께 울어줬던 옆집 아이는 이제 울음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그만큼 영화 <생일>에는 세월호를 함께 겪은 수많은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진정한 위로는 곁에 있어주는 것

정일은 그날 곁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상징한다. 어쩌면 영화 <생일>은 곁을 지키지 못한 ‘우리’에게 한발 더 다가가 함께 기억하고 위로의 마음을 나누자고 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일의 얼굴로 영화가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심장하다.
순남이 수호를 부르며 오열할 때, 정일은 어쩔 줄 모른다. 그때 옆집 우찬 엄마(김수진)가 찾아와 위로한다. 그리고 순남에게 필요한 약이 있는 위치를 정일에게 알려준다. 위로의 마음은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처럼 정일은 서 있다. 영화 <생일>은 정일의 위치에서 한발 더 다가가 함께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꾹꾹 눌렀던 슬픔은 생일 모임에서 뜨거운 눈물로 이어진다. 30분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촬영된 생일 모임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이날 모인 이들은 수호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공유한다. 자신의 집에 놀러와 음식을 축냈다는 사소한 일부터 구명조끼를 양보했다는 뭉클한 기억에 이르기까지 각자 지닌 기억이 모인다.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던 수호의 친구들도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건넨다. 순남도 슬픔을 나누고 유족 모임을 외면했던 사실에 미안함을 전한다. 정일은 엄마에게 가보라고 수호가 찾아왔었다며 오열한다. 그렇게 이날 모인 이들은 슬픔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수호의 기억들은 시(이규리 시인)로 건네진다. “아무도 없는 밤 / 현관 센서등이 반짝 켜진 적 있다죠 / 제가 다녀간 거예요 / 어머니 이제 거실에서 쪽잠 자지 마세요 / 보고 싶을 때 제가 그리로 갈게요 / 울지 마세요 / 나의 사랑 / 나의 그리움 / 우리들의 시간은 다 꽃이었어요”

생일 모임 후 정일은 온전하게 가족 안으로 들어간 듯하다. 정일은 낚싯대(정일은 수호와 낚시하던 즐거운 추억을 지니고 있다)를 손질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평온한 일상이 찾아온 듯하다. 이어 카메라는 밖에서 안을 향한다. 텅 빈 거실 한쪽에서 센서등이 켜진다.

 


 

 

신대욱

현 주간신문 CMN 편집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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